고백하자면 나는 <무위>를 견디질 못한다. 행복한 백수는 상상속에나 존재하고, 나는 철저하게 노동 지향적 인간이기 때문이다. 석사 학위를 대충 쓰고 남은 6개월 동안 남고 남는 시간에 끌려다녔다. 나는 그 경험을 괴로운 경험으로 기억한다.
이 시대에는 우리는 그 사람을 그 사람의 유의 활동, 즉 '직업'으로 판단한다. 이성을 소개 받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이 하는 일을 물어본다. 가장 후진 대답은 아마 '논다'라는 대답이 아닐까. 그 사람의 배경이 아무리 대단해도, 고매한 인격을 가졌더라도 '노는 사람'에게 우리는 색안경을 끼기 마련이다.
이렇게 노는 것들을 인정 못하는 <노동 중독자>들은 드디어 이 세상을 점령했(었)다. <유위> 하지 않고는 이 시간을 주체 못하는 그들이 좋아하는 말은 <가치>, <성과>, <효과> 같은 것들이다. 세상은 그런 그들에게 박수를 쳐준다. 그들은 점점 올라가서 세상을 자기와 닮게 만들려 한다.
하지만 이 성과 시대는 종언을 고하려고 하는 듯하다. 더 이상 <노동> 가치론을 진지하게 믿는 사람은 없다. 18세기 리카르도 후예자(**) 들 몇몇을 제외하고 더 이상 노동이 우리 사회의 가치를 만든 것이라고 믿을까? 세상은 더 이상 노동자들이 움직이지 못한다. 그 여백은 과학, 기술, 엄청난 시스템 등이 메꾸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수없이 많은 <놀고 있는 사람>을 보면 이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기본 소득 담론은 이제 시대의 가장 핫(hot)한 아젠다(agenda)이기도 하다.
이 시대의 숙명 앞에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너는 놀 수 있니? 아쉽게도 나는 산업화 시대의 아들이다. 나는 노동이 더 쉽다라고 고백 할 수 밖에 없다. 어느 정도 노동 중독자이기 때문이다.
** 마르크스도 이 범주에 속한다. 진보 주의자들의 노동 운동에 대한 헛발질은 이 괴리에서
나온다. 그들은 노동에 대해서 숙연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막상 그것이 없는 세상에
대해서는 앨러지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우리 시대의 위대한 진보주의자들은 마르크스 추
종자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죄책감 없이 잘 놀고 있는 유형의 인간일 것이다.
나온다. 그들은 노동에 대해서 숙연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막상 그것이 없는 세상에
대해서는 앨러지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우리 시대의 위대한 진보주의자들은 마르크스 추
종자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죄책감 없이 잘 놀고 있는 유형의 인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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