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15일 화요일

걷기왕

좋으면 그냥 하는거에요. 공무원도, 걷는 것도, 맛있는 음식 먹는것도.. 거창하게 살지 말아요.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고요. 꼰대들을 가볍게 디스하는 첫번째 원칙~ 엄숙해지지 않기

델마와 루이스

폐미니즘 영화라 하기엔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델마는 로드 트립 과정에서 자꾸 변한다.  거추장한 도덕과 윤리를 벗어버린채 점점 자연스럽게 되가는데... 영화를 보고 텍사스, 뉴멕시코 도로를 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연거푸 했다. 쇠사슬을 달고 사는 동시대인들은 델마와 루이스 같은 삶을 한순간이라도 느낄 수 있을까.

2016년 11월 10일 목요일

좋은 글에 대한 단상

좋은 글의 조건을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첫번째, 솔직할 것. 두번째, 알기 쉽게 쓸 것.

첫번째 조건이 충족되는 글은 악문이더라도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독자는 언어의 일종인 글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다. 이경우 전제는 그 글이 진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졸렬하더라도, 삐뚤빼뚤한 글 솜씨를 가진이라도 글이 진정성이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반대로, 수려한 문체 속에 빈약한 진실을 가진 글도 다수 있다. 그런 글들의 대부분의 특징은 허위로 가득찼고, 읽을 가치가 없다.

두번째 좋은 글은 알기 쉬운 글이다. 어렵게 쓰는 글은 대부분 못 쓴 글이다. 글이 어려운 이유는 명료하지 않기 때문이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에 스스로가 엉키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귀한 사상도 쉽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 글은 잠정적으로 실패이다. 그런 글의 수명은 매우 짧다. 읽히기 보다는 소비된다. 

하지만 드물게 세번째의 경우가 있다. 문체가 있는 글이다. 문체는 스타일이며, 형식이지만, 때로는 이것 자체로 글의 품격이 결정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매우 희귀한 경우이다. 글로 먹고 사는 저자라면 이러한 평가는 최고의 찬사이다. 물론, 계속 강조하지만 이 세번째 특징의 글은 찾기 힘들다. 


2016년 11월 9일 수요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만세

현실은 압도적이고 예상밖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이번에도 수많은 정치학자, 엘리트 고위층, 문화계의 여러 인사들의 예상은 여지 없이 빗겨났다. 우리 시대는 또 다른 의미로서 미증유의 시대로 접어든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상상보다 더한 실제, 하우스오브카드보다 극적인 역전 드라마. 꿈이라면 깨고 싶다.

2016년 11월 2일 수요일

젊은 날의 청승과 어떤 허영,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하루키의 초기 작품 주인공은 이십대 초반의 젊은 남자인 경우가 많다. 처녀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도 그런 작품이다. 이 작품 속의 주인공은 그의 친구 '쥐'와 함께 고독, 상실감에 푹 젖어있다.

한참 예민했던 대학 초년 시절 나는 이 작품을 보고 퍽 반했던 것 같다. 왠지 그 주인공을 닮으려했고, 하루키를 통해 어떤 측면에서는 구원 받는 다는 느낌도 받았다. 작가의 다른 책에서도 풍부히 나오는 여러 문화적 코드- 음악, 책, 그외 여러 것들...을 동경했던 것도 같다. 

책의 주인공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현실을 사는 나는 십 몇년의 나이를 먹었고, 다시 그의 책을 읽는다. 주인공은 여전히 섹시하고 매력적이다. 그렇지만 독자인 나는 변했고, 주인공에게 어떤 청승과 그리고 다른 허영을 발견한다. 

소설의 인물들도 나처럼 늙어가면 어떤 표정을 짓고, 말을 할까. 내가 상상하는 그 모습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가끔 실없는 소리를 하고, 소소하게 웃을 것이다. 때론 풋내나는 과거를 회상하겠지만, 그것들에 잠겨 있지는 않을 것같다. 그들은 바삐 걸어갈 것 같다. 

장미의 이름

장자크 아노가 1986년에 만든 중세시대 가톨릭 수도회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 숀 코너리의 중후한 멋과 크리스천 슬레이터의 앳된 모습이 인상적인 작품. 닝겐들의 만든 세상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후진 구석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작품. 지금 살고 있는 시대는 어떤 모습으로 이후 세대에게 보여질까? 우리 시대에는 어떤 광기가 대부분의 사람들을 흔들고 있는 것일까-

2016년 11월 1일 화요일

자신은 뭔가 알고 있다는 생각

망상이다. 이 병이 깊은 사람이라면 어서 병원에 가야 한다. 끝없이 부서지는 포말같은 존재가 파도의 움직임, 혹은 전체 바다를 알 수는 없다. 개인 차원의 닝겐은 무지하고, 무지하고, 또 무지한 존재이다. 닝겐이 개인적으로 맞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느 순간 어긋난다. 미끌어진다. 나는 진정으로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무섭다. 닝겐같지 않기 때문이다.

윤회

<사람은 어느 곳을 여행하든지 자기 자신을 발견할 뿐이다>, 라고 쇼펜하우어가 이야기했다. 개성적인 인간이라면 환경을 바꾸어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의 체험은 자기 자신이라는 필터를 통해 해석되며, 자신은 영원히 극복할 수 없는 어떤 한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돌이켜 보면 윤회라는 형이상학적인 주장도 인간세계에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인간은 그의 삶에서 자기 자신이라고 이야기되는 실체를 따라 끝없이 반복되는 것을 매순간 경험한다. 부처는 그것을 '윤회'라고 불렀다.

**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은 신비로운 사상이다. 그리고 이 사상은 '윤회'와 직접적으로
    비교되는 사상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왠지, 유럽의 부처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이 윤회와 같다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이 모든 것은 쓸데없는 망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