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13일 토요일

가상화폐에 대한 단상(3)

2018년 가상화폐에 열광하는 이들은 2,30대 들이다. 2,30대 들이 처해 있는 현실은 암담하다. 상속을 받지 않는 이상 2,30대 들은 노동소득을 통해 생활을 영위하고, 자산을 축적해야 한다. 물론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티끌모아 티끌이라는 냉소는 젊은 세대들의 시발비용, 소진 잼 등등의 언어생활에 묻어져 있다. 한국 경제시스템의 매년  GDP는 300조가 넘고, 심지어 여전히 '성장'도 한다! 그런데 그 과실은 도대체 누구에게 '분배'되는 것인가?
  
2,30대들은 이 정도의 현실 인식은 누구나 하고 있고 그래서 절망한다. 이때 비트코인이라는 그럴듯해 보이는 아이템이 나온 것이다. SBS에서 반영되었던 비트코인 투자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5000만원을 모았다. 이 돈이 없어도, 있어도 나는 흙수저이다. 그럴바에는 비트코인에 투자한다' 이에 대해 누가 어떻게 반박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가상화폐는 사회의 리트머스 역할을 한다. 대한민국의 경제 규모는 10위권 정도이지만(심지어 서유럽의 스폐인, 이탈리아보다 잘 산다.), 불평등 지수는 미국 다음의 2번째이다. 이 때, 어느 흙수저가 비트코인을 통해 목돈을 벌었다는 소문은 들리기 시작했고, 계급 이동을 하고 싶어하는 2,30대 들은 우루루 몰려간다. 설령 그것이 폰지 게임에 불과한 사기 일지라도... 비트코인을 취급하는 다른 나라보다 그것은 훨씬 더 대단해서, 세계는 '김치 프리미엄'이라는 냉소를 보낸다.
  
비트코인은 어쩌면 우리 사회의 곯아터진 구조를 보여주는 거울일 수 있다. 여기에서 근본적인 혁명을 이야기하는 젊은 세대는 이상하게도 없다. 2,30대 들의 보수성도 여기에서 드러나는데, 그들은 비트코인과 같은 도구를 통해 기성세대와 같아 지고 싶다는 욕망을 표현하지, 세상을 뒤집어 버리고 싶다고는 상상하지 못한다. 이를 보면 결국 후쿠야마 교수가 말한대로 역사는 종료 된 것 같다. 이 체제에 대해 전복적인 상상은 피지배계층에게도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개인 차원의 끊임없는 각개약진의 재배열만 보일 뿐이다.

2018년 1월 12일 금요일

가상화페에 대한 단상(2)

2018년 가상화폐는 소동으로 끝날 것이다. 화폐 발행은 기술의 문제가 아닌 권력의 문제이며, 국가권력은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가상화폐 소동의 효용성은 없는 것일까? 투자차원에서는 없을 것이다. 다만, 생각해 볼 수 있는 주제는 몇 가지 있다.


우선, 화폐 발행 기술이 오픈 소스로 공개 되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많이 들어본 여러 가상 화폐의 플랫폼 기술을 통해 적어도 기술적으로는 화폐구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공동체 화폐 시도는 번번히 실패 하였다. 근본적으로는 정치적 이유이겠지만, 테크닉적으로도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중앙집권적이지 않고, 참여자에게 공평함을 주는 IT 기술은 지금까지 없었다. 기초적 수준에 머물렀던 LETS(local exchange trading system) 시도는 가상화폐를 통해 돌파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향후 의미있는 시도는 일어날 것이며, 중앙권력은 이를 감시할 것이다.


다음으로, 실물 화폐가 아닌 디지털 화폐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 개선이다. 사실 이미 2018년에도 실물 화폐, 즉 물리적인 지폐나 동전 사용은 극히 일부만 쓰여진다. 카드 혹은 계좌이체를 통해 굵직한 거래는 이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 나는 예전에 저축은행에 2,000만원을 실제 화폐로 받으려 한적이 있다. 그 저축은행의 첫번째 반응은 그 정도 실제 화폐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저축은행이라고 하더라도 은행에도 현금 2,000만원이 없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사실 물리적인 화폐 사용을 줄이고 싶어 한다. 그에 대한 솔루션은 가상화폐가 될 것이다.


조만간, 화폐 발행권을 가진 국가권력은 가상화폐와 같은 디지털 화폐를 발행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세금 포탈 문제나 블랙 마켓을 근본적으로 예방하는 방법으로서의 디지털 화폐는 적격이다. 물론, 이 디지털 화폐의 목적은 단위 국가 재정정책의 실현이다. 시장은 국가라는 괴물(리바이어던)의 완벽한 지배를 받을 수도 있다. 모든 거래를 알고 있는 국가가 탄생하는 것이다.


화폐 발행은 아주 첨예한 이슈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기술은 경제의 3주체(국가, 시장, 민간)에게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앞으로 이 기술 활용을 통한 이슈는 심화될 것이다. 이를 용인하지 않으려는 국가, 눈치를 보는 시장, 그리고 이 기술을 적극 사용하려는 민간. 10년 후의 화폐는 어떻게 될까.



2018년 1월 11일 목요일

가상화폐에 대한 단상(1)

가상화폐에 대한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열광과 지지, 비아냥과 비난이 교차하는 가상화폐는 무엇일까? 과연 투자가치가 있는 것일까? 지금이라도 쌈짓돈이라도 내서 1비트(현재 1Bit는 2천만원 수준에서 거래된다)라도 추격매수 해야 하는 것일까?


가상화폐가 작동하는 블록체인 기술이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중앙 은행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IT기술이라고 한다. 즉, 각국 중앙은행(ex. 한국은행)이 발행한 화폐를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인 것이다. 가상화폐는 기존 화폐가 갖지 못한 여러 기능을 가지고 있으니, 현재의 화폐를 대체하는 날도 올 것이라는 것이 지지자의 주장이다.


이것은 오류이다. 당위와 사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자연주의적 착오이다. 물론, 가상화폐 지지자들의 주장이 거짓은 아니다. 그들의 말은 옳다. 그들이 주장하는대로 가상화폐는 다양한 특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자체 사실일 뿐이다. 


화폐 발행은 국가 경제 최종 심급의 권한이다. 심지어 우리나라와 미국은 화폐 발행에 대해서 행정부조차 관여하지 못한다. 화폐 발행을 하는 한국은행은 행정부와 평행한 국가단체이다. 화폐 발행권을 둘러싼 음모와 역사는 짧은 지면에서 기술 될 수 없다. 간단히 줄여 말하면 브레턴우즈 체제가 폐기되어 태환화폐에서 법정화폐로 전환 되었고, 이제 화폐 가치를 보증해 주는 것은 국가라는 영속적인 단체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가상화폐는 그 가치를 보증해 줄 수 있는 권력기관의 허락 없이는 IT 기술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 화폐는 국가권력의 고유 권한인데, 그것을 허락하는 순간 국가 단위의 통화정책이나 환율정책은 모두 교란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가상화폐는 화폐가 아니라면 상품이라도 될 수 있을까? 내 생각은 그러지도 못할 것 같다. 이 가상화폐는 내재하고 있는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주식과 채권과 비교하면, 명쾌하다. 주식은 기업의 지분을 보증하며, 채권은 채권자로서의 자격이 주어진다. 하지만 가상화폐가 보증하고 있는 실체는 없다. 폰지 사기나 네델란드의 튤립 파동처럼 오로지 그것을 사줄 수 있는 다음 누군가만이 그 가상화폐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


화폐는 종교와 작동원리가 같다. 믿음이다. 화폐에 대한 믿음은 사회 구성원과 각국의 질서이며, 약속이다. 누군가가 의심하게 되면 그 원리는 작동되지 않는다. 가상화폐 지지자들은 성경에서 의심하고 있는 토마스에 대한 예수의 답변을 움켜쥐고 있을지 모른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고대인과는 다르게 상당히 영악하다. 이미 붕괴는 시작되고 있는 듯하다.

2018년 1월 10일 수요일

나이가 든다는 건

아직 젊다. 건강에 심각히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독서와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며, 자전거 타기도 좋아한다. 조만간 세계여행을 다녀올 계획이며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당장은 급하지 않을 정도의 저축액도 있다. 오히려 내 상황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하다. 다만, 올해 나는 확연한 삼십대 후반이 되었는데 이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다.
 
<나이가 있네?> 라고 말을 들은 것은 35살 정도 즈음이었다. 대학원을 마치고 두번째 직장인 센터에 채용되었을 때 겉보기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략 30대 초반을 넘으면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나이가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정규 학업 코스도 마치고,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한 사람들은 그 정도 살아온 햇수가 있는 것이리라.

그 나이가 들었을 때는 50세 전후의 사람들이 그렇게 멀지 않게 느껴진다. 오히려 그 시기의 사람들도 나와 별반 없는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의 표정에서 옛 시절 앳된 느낌을 포착하기도 하고, 각자 삶의 고단함에 같이 한숨 쉬어 줄 수도 있다. 어찌보면 사람들은 갑자기 나이가 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십년 전의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한채 십년이 흐른것이다. 거울앞의 희끗한 머리와 푸석한 피부에 새삼 세월을 느낀다.


사람들은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나이 들고 싶어서 든 것도 아니다. 이렇게 생각을 해보면 삶의 아주 중요한 부분은 우리가 손 쓸새 없이 결정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기묘한 상상을 하게된다.


자아를 가지고, 개인주의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현대인들은 과연 저마다의 삶의 주인공일까? 나이가 들고, 용모가 바뀌고, 조금 있으면 세상은 그들에게 <나이가 있네?> 라는 말을 하는데?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자기 밖의 평가에 승복하고 나이 값에 맞게 행동하려고 한다. 몇몇 일부는 이에 대해 발악에 가까운 저항을 하지만, 결국 그들의 모습은 자기 나이에 수렴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래서 가장 공평한 복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계급, 빈부, 귀천에 상관없이 누구나 늙는다. 세월은 야속하지만, 그 야속함은 만민에게 적용된다. 아이러니와 모순에 가득찬 이 세상이 주는 최소한의 위로는 같이 나이 먹는다는 것이다. 떡국을 먹는다. 나이를 먹는다.

2018년 1월 9일 화요일

N 팀장 말실수 사태

내겐 요즘 현대인들에게 매우 드문, 희귀한 자원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시간이다. 2018년 1월부터 센터를 더 이상 다니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이 자유가 주는 긴긴 시간을 잘 보내고 싶고 그 방법으로 글쓰기를 생각한다.
 


센터를 떠나면서 N 팀장의 정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작은 키에 약간 똥똥한 스타일의 N 팀장은 다양한 평가를 받았다. 어떤 사람은 상종 못할 인간으로 취급하기도 했고, 어떤 이는 얍삽하다고 단언했다. 다만 나는 작년 12월 어느 사건 이전까지는 이분에 대해 부정적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경박한 면이 있지만 긍정적인 측면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민주적으로 보였고, 일 처리도 꼼꼼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N 팀장의 단점도 있다. 말 실수가 많았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들은 것처럼 말하는 것 같았다. 예전에 나와 다른 팀원에게 < 'XXX씨가 센터에서 일이 없다'라고 하는 평가가 있다 >라고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결국 이 의견은 N 팀장의 의견이었다. (** 직접 물어보고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여러 사람과  그 이후의 경험을 통해 합리적으로 N 팀장의 의견이었다고 판단된다.)



결정적으로는 하지 말아야 할 말 실수를 했는데, 이 사건으로 나는 N 팀장에 대한 기존의 긍정적인 평가를 철회하게 되었다. 그는 2018년 12월까지 경력단절여성으로 이루어진 17인의 인원들에게 2018년 3월까지의 조기 계약 종료를 제안한 것이다. 이 제안은 계약 당사자의 의견을 무시한채, 순전히 센터 입장만 고려한 것이었고  N 팀장의 독단적인 생각이었다.



이 제안은 12월 14일 목요일에 경력단절여성에게 발설 되었으며 내가 퇴사하기 전까지도 엄청난 구설수를 낳았다. 경력단절여성들은 항의의 표시로 서면 입장을 발표하였으며, 센터장에게 보고되었다. 아마 N 팀장은 상사들에게도 많이 까였을 것이다. 이 사태는 결정적으로 경력단절여성들의 담당자(나)가 퇴사하는 상황에서 그 역할을 할 N 팀장에 대한 신뢰는 사라졌다. N 팀장은 이 사건 이후 내가 센터에 있는 동안 말을 조심하는 것 같았다.
  
나는 센터에 애정이 있었다. 물론, 센터가 사람관리를 못한다고는 생각했다. 복잡하고, 복잡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해할 수 있었다. 조직관리를 하기에는 여력이 없는 조직일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위에도 언급한 'XXX씨가 센터에서 일이 없다'라는 말을 듣고 당시에 무척 실망했다. 나의 노력과 태도가 저평가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업무 의욕이 없어졌다. 이 언급은 직접적인 퇴사의 이유는 아니었지만 퇴사를 생각해보는 계기는 되었다.
 
그런데 12월이 되어 <N 팀장 말실수 사태> 난리를 겪고나니, 그 말은 N 팀장의 생각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책임없이 말을 옮기는 습관이 있다. 사람에 대한 식스센스 같은 반전을 경험했고, 나는 센터 주변 사람들에게 사람보는 눈이 없다는 지청구를 들었다. 말 보다는 행동을 보아야 했던 것이다.
 


N 팀장에게 12월의 마지막 평일에 업무 인계식을 했는데, 그 때의 내 태도는 다소 냉정했다. 그때 N 팀장은 본인도 1월에 센터를 그만둔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과연 그만둘까? 나는 믿지 않는다.

2018년 1월 8일 월요일

Discipline. 규율

매일 생활을 성찰하는 것은 퍽 중요한 일이다. 하루가 모여 삶을 이루고 사실 하루를 치열하게 사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이다. 직장 생활의 유리한 지점도 바로 그 부분인데, 어쨌든 직장생활을 통해 강제로 생활 규율은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내 생활은 나와의 싸움이 될 것이다. 생활은 지리할 것이며, 하루가 무료와 지루로 구성될 수도 있다. 이것을 이겨내야 한다. 정신력으로 극복하자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취약 시간은 점심을 먹은 이후 1시부터 3시까지이다. 이 시간에 나는 잠이 쏟아진다. 이 시간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장치를 고안해야 한다. 집중적으로 운동을 하거나 교육을 받으러 갈 수도 있다. 집안일을 이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센터를 그만두면서 다짐한 것이 있다. 더 이상 타인의 욕망이나 의지에 휩쓸리는 삶을 살기는 싫다는 것이다. 영리기업에서 사주와 주주의 이익을 위해 무한 봉사하는 노동자의 삶도 싫었고, 센터같은 비영리기관에서 사회 명사의 장기판 말처럼 움직이는 것도 싫었다. 나는 내 삶을 살아야 한다고 계속 내안에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 결단이 늦어지면 그만큼 나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주변의 눈치를 계속 보게 될 것이며 스스로의 판단보다는 상사와 같은 존재의 의사결정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나이들어 퇴직한 사람들, 즉 피라미드 조직에서 사회생활을 한 사람들의 취약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천천히 자신의 삶의 주도권을 놓치게 된다. 그 스며듬은 장기간 이루어지기 때문에 제2의 천성처럼 될 위험성도 다분하다. 그래서 결국 조직 생활을 할 때 명심해야 할 점은 역설적으로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면에서 새 삶을 계획할 수 있는 나는 운이 좋다. 하지만, 자발적인 삶을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자율적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숙제가 있다. 그 자율은 스스로를 규율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를 다잡아야 하고, 동기부여해야 하고, 삶을 구성하는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내 삶의 첫번째 원칙은 discipline이다. 오늘 퇴사하고 거의 처음으로 혼자 지내는 하루를 맛본 것 같다. 오늘을 기억하며, 내일은 더 알차게 살아야 한다.


create, discipline, enjoy

2018년 1월 7일 일요일

2018 새해 계획

2018년 새해 계획은 다음과 같다.


1. YL이 변호사시험 합격시키기
   : 당장 내일부터 중간의 하루 휴식을 포함하여 5일간 시험이다.
     사직서를 낸 시점부터 계속해왔지만 특히 이번주에는 더 잘 관리해야겠다.
     시간이 되면 기도를 해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2. 여행 잘 다녀오기
    : 그래도 120일간의 세계일주를 계획하였다. 아직 정보를 수집하고 있고, 정해지지 않은
    것도 있지만 얼추 계획이 잡힌 것이다. 120일동안 안전하게 여행을 잘 다녀올 수 있도록
    해야겠다.


3. 하루 한개의 글을 쓰기
    : 사직서를 냈을 때의 그 심정으로 돌아가서 살아야 한다. 하루에 하나의 어떤 잡글이라도
    써야겠다. 우선 여행을 갔을 때는 그날 일정에 따른 느낀점, 본거, 사실 기록이라도 충분히
    할 것이다. 기록을 위한 시간을 별도로 둘 예정이며, YL이와 상의를 하거나 독립적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


Enjoy, Discipline, Cre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