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2일 일요일

소환으로서의 종교 : 예수

세상사의 진리는 없다. 있다면 사람들 사이의 동의만 있을 뿐이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의 옳고 그름, 선과 악, 미추는 사람들의 평균에 수렴한다. 일부의 엘리트들은 자신만의 전문성에서 그러한 상징체계를 정교화하고 대변할 수 있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인간, 인간들이 결정하는 것이다.


신이란 개념 또한 그러하다. 속세를 초월한 존재로서의 신의 정확한 개념을 나는 모른다. 다만, 나를 벗어난 사람들은 그러한 존재의 후보자를 알고 있고 그 중 하나는 예수이다. 예수의 삶과 죽음은 비신자에게도 충분히 알려져 있다. 그를 잃은 12제자와 여인들의 고통은 2000년이 지나 우리에게도 알려져있다. 예수는 스스로를 사람의 아들이라고 지칭하였으나, 그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은 여러 개념을 고안해 내었고, 기독교전통에서 결국 '신'이라고 호명되었다.
 
나는 이 지점에서 신의 개념을 다시 생각한다. 이제 우리 시대의 신은 교부학자들의 신과는 달라 보인다. 신의 존재는 토머스 아퀴나스 식의 논리적이고 귀납적인 논증으로 증명되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신이 존재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는 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믿으면(사회과학적인 표현으로 간주관성)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시대는 묵시론적인 위험, 절망, 고통으로 넘쳐나니, 아마 신이라는 개념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때마다 인간들은 2000년 전에 숙명적으로 죽어간 한 인간을 기억해내고, 제도로서의 종교의 해설이 곁들여지면 신으로 추앙받게 되는 것이다.


니체의 말대로 어떤 이는 죽음으로서 다시 태어난다고 한다. 예수는 죽었지만, 매순간 다시 태어나고 있으며 가톨릭 미사에서 이야기하듯이 세상을 영원히 다스린다. 왜냐하면 매시대 인간들의 선택을 받기 때문이다. 신은 2000년전에 죽었다. 하지만 인간들에게 소환된다. 그는 부활하며, 인간들은 스스로 그를 신이라고 <소환한다>. 그러한 믿음은 공고해지기도 하고, 허물어지기도 하며, 역사에 참여한다. 그는 살아있는 누구보다도 영향을 끼치며 우리의 시대에 참여한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신>의 개념이다.  박제되지 않고, 영원히 기억속에 남아 살아 있는 어떤 존재. 어찌보면 나는 예수가 진정 신이라고 믿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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